11. 천상의 즐거움을 포기한 싯다르타는 이번에는 지옥 같은 고행(苦行)을 선택한다. 당시 인도에는 극한의 고통을 스스로에게 가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수행이 만연해 있었고, 이 젊은 수행자도 이를 따른다. 그의 수행은 보리 한 톨로 하루를 버티는 극심한 단식을 지속하거나 매우 덥거나 추운 곳에서 선 채로 잠을 자지 않는 식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고행은 머리가 터질 정도로 오랫동안 숨을 참는 것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12. 육 년간의 고행을 하며 몸의 털이 뿌리째 말라 떨어질 정도로 쇠약해진 그는 아무리 극심한 고행도 삶과 죽음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이를 포기한다. 기진맥진한 그는 마을 강가에서 한 여인이 만들어 준 우유죽을 먹는데, 이때 함께하던 다섯 수행자는 싯다르타가 타락했다고 여겨 그를 떠난다. 훗날 붓다는 자신의 고행에 대해 '이와 같은 고행을 한 사람은 세상에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13. 기력을 회복한 그는 인도 보드가야(Bodh Gaya)에 있는 한 보리수나무 아래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보리수 아래, 고요한 달빛 속에서 아직 부처가 아니었던 그는 깊은 선정에 들어간다.
14. 어느 날 초야에 이르러 그의 마음은 거울처럼 맑아져 수많은 생에서 자신이 어떤 이름으로,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어떤 세상에 태어나서 죽은지를 기억하는 숙명통(宿命通)을 얻는다. 그 후 자정 무렵에 이르러서는 수행자는 인간과 천상, 지옥과 축생의 모든 생명체의 세상을 꿰뚫어 본다. 마음이 맑고 선한 행을 짓는 중생은 밝은 곳으로, 탐욕을 부리고 악한 행을 짓는 중생은 어두운 곳으로 간다고 알고 보는 천안통(天眼通)을 얻는다. 샛별이 떠오를 무렵, 그의 마음은 더욱 맑아져 어리석음과 탐욕이 소멸하는 것을 보았고, 더 이상의 태어남은 없으며 윤회의 사슬이 끊어졌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그는 깨달은 이가 된다.
15. 보리수 아래에서 붓다가 된 그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돌아보며 '이 법은 심오하고, 미묘하고, 고요하며, 논리로 헤아리기 어렵고, 오직 스스로 깨달은 자만이 알 수 있다. 중생들은 탐욕과 어리석음에 덮여 있으니, 내가 이 법을 설해도,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법을 설하지 않고 고요히 머물려고 하였다. 그때 범천(梵天)이라는 천신(天神)이 그 마음을 헤아리고 '세존이시여, 세상을 밝히시는 분이시여, 마음의 먼지가 적은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가르침을 들으면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고 간청하고 세존은 이를 받아들인다.
16. 붓다의 깨달음은 천상의 즐거움(樂)과 고행의 고뇌(苦)를 모두 떠나고 중도(中道)를 취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가르침 때문에 불교에서는 천상을 강조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타종교에서는 가르침을 펼치는 이를 '신의 대리자', '알라의 마지막 예언자', 혹은 '하나님의 아들' 등으로 부르는 데 반해서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천인사(天人師), 즉 '신과 인간 모두의 스승'으로 모시는 연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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