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주말 시간을 내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다녀왔다. 메트로폴리탄만 다섯 번 정도 방문한 것 같은데, 이번에는 괜찮은 가이드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참여했다.

 

 

2. 그동안 뉴욕 미술관을 다니면서도 전문적인 지식 없이 작품을 감상해 왔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면 작품이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약 두 시간에 걸쳐 설명을 들었지만, 솔직히 이전과 큰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예술 작품은 누군가의 해설을 듣는다고 해서 그 감동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3. 이번에도 이집트 유물관이 인상 깊었다. 회화 작품 중에서는 고흐, 모네, 르누아르, 그리고 잭슨 폴록이 좋았다. 특히 모네와 잭슨 폴록의 작품을 보고 있을 때는 순간 머리에 소름이 조금 돋았다.

 

 

4.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전체 공간의 80% 정도가 상설 전시이고, 2층 구석에는 늘 특별전이 열린다. 이번에는 르네상스의 세 거장 중 한 명인 라파엘로 특별전이 마련되어 있었다. 라파엘로의 작품은 워낙 귀해 세계적인 미술관들도 두세 점 정도를 소장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전시는 열 곳이 넘는 나라에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백 점이 넘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5. 특별전에는 완성된 작품뿐 아니라 수십 점의 스케치와 데생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그 앞에 서 있으니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집념과 노력이 느껴졌다. 이 양반이 밥 먹고 그림만 그렸다는 것이 느껴져서 존경과 경이로움, 그리고 부끄러운 감정이 함께 들었다. 메트로폴리탄의 작품들은 모두 훌륭하지만, 그중에서도 라파엘로의 작품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5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그에게서 무언가를 느끼기 때문일까. 다른 어떤 전시관보다도 그곳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6. 집에 오는데 새삼 뉴욕이라는 도시가 지닌 중력을 느꼈다. 이 정도의 예술 작품들을 한곳에 모으고, 또 이러한 시도를 인정하고 후원할 수 있는 곳은 아마 제국의 수도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지구상에는 이처럼 깊은 중력을 가진 도시가 한 시대에 한 개 정도 존재하지 않았을까. 고대에는 로마, 중세에는 장안, 근세에는 런던, 그리고 오늘날에는 뉴욕으로 그 바통이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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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나는 U와 갈등을 겪었던 인턴 친구 S의 마음에도 자연스럽게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어쩌면 S가 그렇게까지 염치없어 보일 정도로 U와 그 가족들에게 기대고 실례를 했던 이유 역시, 미국이라는 나라를 너무나 동경했기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끝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살아온 S에게 뉴저지에서의 삶은 거의 천국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휴가철마다 광활한 대자연으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 맑은 공기와 푸른 잔디, 사슴이 뛰노는 동네 한가운데 자리한 넓은 집.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U를 보며, S는 평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자유와 안도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U와 그 가족이 보여준 풍족하고도 거리낌 없는 친절 속에서, 그녀 역시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4. 얼마 전에는 다른 부서 팀장에게서 S가 거의 매일같이 초과근무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사들의 눈에 들어 미국 비자 스폰서를 받기 위해서라는 소문도 함께였다. 또 다른 곳에서는, S가 영주권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뉴저지에 있는 한인 변호사들을 수소문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두 달 전쯤, S가 내게도 연락을 해 온 적이 있었는데, 그 역시 영주권과 관련된 이유였다.

 

 

15. 그리고 나는 문득 S에게서도 과거의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유학을 오기 전, 미국이라는 나라와 그곳에서 펼쳐질 미래에 가슴이 벅차오르던 젊은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 막연한 동경은 불교를 만나고, 또 사업 실패를 겪으면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사그라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의 열정은 분명 순수했고도 강렬했다. 동시에, 지금의 내가 알게 된 것들은 결국 직접 부딪히고 실패해보지 않았다면 끝내 깨닫지 못했을 종류의 것들이었다.

 

 

16. 지난 일 년 동안 U와 친구들을 지켜보며 나는 찬란하면서 서글픈 묘한 감정을 느꼈다. 젊은 나이에서만 가능한 열정은 눈부시게 찬란했지만, 언젠가는 그들 역시 나처럼 빛을 잃어갈 것임을 알고 있기에 서글펐다. 그리고 정말 우연하게도, 이 글을 쓰고 있던 도중 U에게서 아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She is so disrespect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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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렇게 별다른 일 없이 일 년 정도가 흘러가는 듯했지만,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지난주, U는 회사 메신저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요지는 한국 사람들은 지나치게 이해타산적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은 살면서 이렇게까지 계산적인 인간관계를 가진 적이 없으며, 미국에서 평생 살아오면서 친구 사이에서 어떻게 이 정도로 give-and-take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7.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얼마 전 봄 휴가를 맞아 U는 가족과 함께 Arizona 에 있는 별장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턴 친구 중 한 명인 S가 자신도 꼭 함께 가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한다. U는 가족 여행인 데다 아버지의 지인 가족과도 시간을 보내기로 되어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난색을 표했지만, S가 “정말 Arizona에 가보고 싶다”며 재차 부탁해 결국 동행을 허락했다고 했다. 다만 여행 전부터 “가족 일정이 많아서 네가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지는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설명해두었다고 한다. 

 

 

8. 그렇게 항공권과 식사비, 숙박비까지 모든 비용을 U의 부모님이 부담한 채 여행을 떠났는데, 막상 현지에 도착한 뒤 S의 행동은 U를 크게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아버지 지인 가족과 식사 자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S는 자신은 그런 자리가 불편하다며 비용만 지원해주면 따로 식사를 하고 오겠다고 했고, 여행 내내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몇 장만 찍은 뒤에는 빨리 다른 장소로 이동하자고 재촉했다는 것이다.

 

 

9. 휴가에서 돌아온 U는 더 이상 그 친구와 관계를 이어갈 수 없을 것 같다며 내게 불평을 토로했지만, 나는 그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지 않았다. 대신, 일 년 전 우리가 나누었던 메신저 기록을 찾아 “Friendship is more fragile than you think”라고 적혀 있던 문장을 캡처해 보내주었다. U는 민망해하면서도 결국 내 말에 수긍했다. 다만 자신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관계가 이렇게까지 어긋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10. 며칠 뒤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U와 한국 친구들 사이의 관계가 왜 이렇게 흘러가게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핵심은 U가 마음 깊은 곳에서 한국 친구들을, 그리고 한국을 너무나 그리워했다는 점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평생 미국 친구들 사이에서 살아왔지만, 몸 깊숙이 스며든 한국적 정서까지 지워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집 안에서도 신발을 벗지 않는 미국 친구들에게서 무의식적인 거리감을 느껴왔던 U는, 맨발로 집안을 돌아다니며 함께 밥을 먹고 어울리는 한국 친구들 속에서 어떤 익숙함과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심지어 U의 어머니는 처음으로 “드디어 네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을 해줄 날이 왔네”라며 무척 기뻐하셨다고 했다.

 

 

11. 그리고 나는 문득 U에게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가 직전에 다니던 미국 대기업을 떠나 연봉의 70% 이상을 삭감하면서 지금의 회사로 이직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 역시 비슷한 감정 때문이었다. 미국 기업에서 나는 일을 아무리 잘해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도, 회사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해도 끝내 깊은 유대감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그들에게 나는 “일 잘하고 성격 좋은 사람”일 수는 있어도, 어디까지나 이방인이라는 감각을 떨쳐낼 수 없었던 것이다. 

 

 

12. 내가 높은 연봉을 포기하면서 소속감을 선택했던 것이나, U가 한국 친구들에게 기꺼이 밥값을 내고 시간을 쏟았던 것 역시 결국 같은 뿌리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U를 함부로 비난하거나 충고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곱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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