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여러 방면으로 책을 다시 읽게 되면서 뉴저지에서 열리는 한 독서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십여 년 전 우연히 참가했던 대학생 독서모임에서 지금까지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자유로부터의 도피, 그리스인 조르바와 같은 좋은 책들을 접했던 기억이 좋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2. 뉴저지에서 열린 첫 모임의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나는 오래전에도 데미안을 읽은 적이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책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읽었던 것 같다. 이후 불교를 공부하면서 헤세의 싯다르타를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도 있었다.

 

이번 기회에 데미안을 다시 읽었는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감탄하면서 읽게 되었다. 영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수려한 문체와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는 방식에 감탄한 적은 종종 있었지만, 유럽 작가인 헤르만 헤세가 보여주는 동양 문화에 대한 이해, 특히 불교에 대한 이해는 독보적이었다. 기독교 선교사 집안에서 자라며 기존의 종교를 깊이 이해한 동시에,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었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문장들이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더라도 감탄하게 만드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데미안이 어떻게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이 되었는지, 그리고 세계대전 이후 허무와 혼란에 빠져 있던 유럽인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며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는지도 조금은 체감할 수 있었다.

 

 

3. 문제는 첫 모임에서 발생했다. 막상 모임을 시작하고 책을 읽은 소감을 나누는데, 의외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너무 지루했고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소설 정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내가 보기에 데미안은 철저하게 구도(求道)에 관한 이야기였다. 오히려싯다르타보다도 더 철저하게 종교적인 이야기라고 느꼈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 모임에서는 나와 비슷한 관점에서 이 책을 읽은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한 분위기를 체감한 나는 모임 내내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4. 한 가지 예시를 들자면, 데미안에는 아래와 같은 유명한 문구가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여기에서 ‘알’은 자아(ego)를 상징한다. 또는 개인이 살아오면서 형성한 생각과 믿음, 관념을 표방하거나, 외부로부터 주입된 사회적 통념과 종교적 관습, 도덕적 기준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태어나려는 자, 즉 깨달음을 얻으려는 자는 이렇게 단단하게 뭉쳐 있는 상(相)을 깨뜨려야 한다.

 

이는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깨뜨려야 한다는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 ‘나’라는 생각, ‘사람’이라는 생각, ‘나는 평범한 존재’라는 생각, 그리고 ‘나는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세계를 파괴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존의 세계를 부정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세계의 틀을 깨뜨리는 일이다. 마치 원효 스님이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신 뒤, 자신이 보고 느끼는 세계가 결국 자신의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깨달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브락사스는 바로 그 너머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즉 가장 높은 깨달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해탈과 열반의 세계다. 서양의 종교에서는 흔히 선과 악, 천국과 지옥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아브락사스는 천국과 지옥, 그리고 인간의 세계를 모두 품는다. 헤세는 선과 악을 나누는 기존의 경계를 넘어, 그 모든 것을 하나의 전체로 받아들이는 일심사상(一心思想)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4. 그다음 모임에서 다룬 책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한 한국 작가의 소설이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상당히 지루했다.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하게 느껴졌고, 주인공들의 감정 묘사도 가볍게 느껴져 좀처럼 이해하거나 몰입하기 어려웠다.

 

데미안을 읽을 때에는 마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감칠맛과 간, 굽기의 정도, 식감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에 극도의 정성을 들인 음식을 대접받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책을 읽을 때에는 동네 식당에서 냉동 재료를 사용하고 조미료로 맛을 낸 음식을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5. 나는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관점에서 책을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모임에 참가했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데미안을 읽었을 때와는 정반대로, 이번에는 모든 사람들이 책에 깊이 감탄하며 읽었다고 했다. 각자 책의 내용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고, 몇 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나는 책의 내용 자체에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이 무엇에 감탄하는지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그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6. 결국 지난 모임을 끝으로 독서모임을 그만두게 되었다. 아마 비슷한 형태의 독서모임에는 앞으로 두번 다시 참여하지 않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독서모임에서 다른 사람들과 책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었던 것은,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몇 번의 모임을 통해 오히려 정반대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느낀 당혹감은 책에 대한 취향의 차이보다도,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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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만에 주말 시간을 내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다녀왔다. 메트로폴리탄만 다섯 번 정도 방문한 것 같은데, 이번에는 괜찮은 가이드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참여했다.

 

 

2. 그동안 뉴욕 미술관을 다니면서도 전문적인 지식 없이 작품을 감상해 왔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면 작품이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약 두 시간에 걸쳐 설명을 들었지만, 솔직히 이전과 큰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예술 작품은 누군가의 해설을 듣는다고 해서 그 감동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3. 이번에도 이집트 유물관이 인상 깊었다. 회화 작품 중에서는 고흐, 모네, 르누아르, 그리고 잭슨 폴록이 좋았다. 특히 모네와 잭슨 폴록의 작품을 보고 있을 때는 순간 머리에 소름이 조금 돋았다.

 

 

4.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전체 공간의 80% 정도가 상설 전시이고, 2층 구석에는 늘 특별전이 열린다. 이번에는 르네상스의 세 거장 중 한 명인 라파엘로 특별전이 마련되어 있었다. 라파엘로의 작품은 워낙 귀해 세계적인 미술관들도 두세 점 정도를 소장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전시는 열 곳이 넘는 나라에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백 점이 넘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5. 특별전에는 완성된 작품뿐 아니라 수십 점의 스케치와 데생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그 앞에 서 있으니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집념과 노력이 느껴졌다. 이 양반이 밥 먹고 그림만 그렸다는 것이 느껴져서 존경과 경이로움, 그리고 부끄러운 감정이 함께 들었다. 메트로폴리탄의 작품들은 모두 훌륭하지만, 그중에서도 라파엘로의 작품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5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그에게서 무언가를 느끼기 때문일까. 다른 어떤 전시관보다도 그곳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6. 집에 오는데 새삼 뉴욕이라는 도시가 지닌 중력을 느꼈다. 이 정도의 예술 작품들을 한곳에 모으고, 또 이러한 시도를 인정하고 후원할 수 있는 곳은 아마 제국의 수도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지구상에는 이처럼 깊은 중력을 가진 도시가 한 시대에 한 개 정도 존재하지 않았을까. 고대에는 로마, 중세에는 장안, 근세에는 런던, 그리고 오늘날에는 뉴욕으로 그 바통이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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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나는 U와 갈등을 겪었던 인턴 친구 S의 마음에도 자연스럽게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어쩌면 S가 그렇게까지 염치없어 보일 정도로 U와 그 가족들에게 기대고 실례를 했던 이유 역시, 미국이라는 나라를 너무나 동경했기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끝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살아온 S에게 뉴저지에서의 삶은 거의 천국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휴가철마다 광활한 대자연으로 여행을 떠나는 가족, 맑은 공기와 푸른 잔디, 사슴이 뛰노는 동네 한가운데 자리한 넓은 집.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U를 보며, S는 평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자유와 안도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U와 그 가족이 보여준 풍족하고도 거리낌 없는 친절 속에서, 그녀 역시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4. 얼마 전에는 다른 부서 팀장에게서 S가 거의 매일같이 초과근무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사들의 눈에 들어 미국 비자 스폰서를 받기 위해서라는 소문도 함께였다. 또 다른 곳에서는, S가 영주권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뉴저지에 있는 한인 변호사들을 수소문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두 달 전쯤, S가 내게도 연락을 해 온 적이 있었는데, 그 역시 영주권과 관련된 이유였다.

 

 

15. 그리고 나는 문득 S에게서도 과거의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유학을 오기 전, 미국이라는 나라와 그곳에서 펼쳐질 미래에 가슴이 벅차오르던 젊은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 막연한 동경은 불교를 만나고, 또 사업 실패를 겪으면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사그라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의 열정은 분명 순수했고도 강렬했다. 동시에, 지금의 내가 알게 된 것들은 결국 직접 부딪히고 실패해보지 않았다면 끝내 깨닫지 못했을 종류의 것들이었다.

 

 

16. 지난 일 년 동안 U와 친구들을 지켜보며 나는 찬란하면서 서글픈 묘한 감정을 느꼈다. 젊은 나이에서만 가능한 열정은 눈부시게 찬란했지만, 언젠가는 그들 역시 나처럼 빛을 잃어갈 것임을 알고 있기에 서글펐다. 그리고 정말 우연하게도, 이 글을 쓰고 있던 도중 U에게서 아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She is so disrespect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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