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붓다는 천상을 생명체가 태어나기 좋은 곳이라 하여 선처(善處) 중 한 곳으로 여겼다. 그럼에도, 붓다는 입멸 직전 제자들이 마지막 가르침을 청했을 때, '스스로를 귀의처로 삼고 남에게 의지하지 말라. 진리를 귀의처로 삼고 진리가 아닌 것에 의지하지 말라.'고 유언 후 반열반(般涅槃)에 들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 의지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붓다의 생애와 사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7.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행자가 된 싯다르타 태자는 당대 최고의 수행자로 알려졌던 알라라 칼라마(Āḷāra Kālā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āmaputta)를 찾아간다. 싯다르타는 몇 개월도 되지 않아서 그들과 같은 경지에 도달하는데, 훗날 깨달음을 얻은 그는 이 당시 얻었던 명상의 경지가 각각 무소유처(無所有處)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임을 암시한다.
8.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는 무색계(無色界)라 하여 극소수의 전문 수행자들만이 도달하는 가장 높은 마음의 상태이다. 천상에서도 가장 높은 천상에 해당하며, 이곳에 사는 신들은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오랫동안 행복을 누리며 산다. 웃다까 라마뿟따와 알라라 칼라마는 싯다르타에게 함께 교단을 이끌며 이 행복을 사람들에게 나누자고 제안하지만, 싯다르타는 이를 거절한 후 6년 간의 처절한 고행길을 떠난다.
9. 젊은 싯다르타가 다시 길을 떠났던 것은 그 수승한 행복마저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무색계에 태어난 신들이 오랜 기간 행복을 누린 후에는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여 더 낮은 천상으로 떨어지거나, 심지어 악처(惡處)라 불리는 지옥과 축생까지도 윤회할 수 있음을 알았다. 천상에 가는 것이 삶과 죽음을 온전히 극복하는 길이 아님을 간파하였던 것이다.
10. 현대의 많은 종교들에서 천국을 절대적인 선이며 영원한 행복으로 여긴다. 그러나 천국에 간 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 어떤 즐거움과 쾌락도 시간이 지나면 권태(倦怠)로 변하기 마련일 텐데, 천국은 어떤 대안을 주는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이 모였더라도 그 속에서는 탐욕과 시기, 질투가 들끓을 텐데 이를 온전한 행복으로 여길 수 있는가? 붓다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삶과 죽음에 관한 진리에 대해서는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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