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오후에 일과를 하다가 잠시 쉬는데 유튜브에 한 광고 영상이 보였다. 어제와 오늘에 걸쳐 법륜스님이 뉴저지와 뉴욕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주변 불자들에게 법륜스님이 미국에 오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그게 오늘, 그것도 다섯 시간 후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여자친구의 회사 일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나는 혼자서 부랴부랴 Queens 대학교의 강당으로 향했다.
2. 법륜스님은 불교 수행자들 중에서도 독특한 행보를 보이시는 분이다. 불교의 종파는 크게 상좌부(上座部)와 대승(大乘)으로 나뉘는데, 상좌부는 수행을 통한 나 자신의 해탈을 강조하는 반면, 대승은 다른 사람들의 해탈을 도운 뒤 자신의 해탈을 이루겠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의 수행자들은 자신과 같은 수행자들과 어울려 살아가지만, 법륜스님은 대중들 속에 스며들어 함께 수행을 하는 대승(大乘)의 삶을 살고 계신다. 이러한 수행을 보살도(菩薩道)라 하는데, 자비심이 큰 수행자들이 걸어가는 길이다.
3. 저녁 일정 때문에 강연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수백명의 사람들이 강당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나는 강당 뒤의 복도 바닥에 앉아 강연을 들었다. 강연은 언제나처럼 유머러스했지만 궁금증을 자아내는 흥미로운 질문은 없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은 대중적인 질문 위주로 진행되고, 조금 더 깊은 질문을 하고 싶은 사람은 정토회에 활동하며 법륜스님 근처에 가야하는 구조인 듯 했다.
4. 강연이 끝나고 사인을 해주시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법륜스님의 스승이었던 서암(西庵)스님의 책 두 권을 샀다. 법륜스님이 30대 초 한국불교에 회의가 생겨 작은 사찰에 머물며 한 노승을 만나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그 노승이,
"여보게 젊은이, 어떤 사람이 논두렁에 앉아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고 그 논두렁이 절이라네. 그것이 불교야."고 하자 자신을 크게 뉘우쳤다고 알려져 있다. 그 노승이 후일 조계종 종정을 역임했던 서암스님이다.
5. 간담회가 끝난 후 스님께 책을 건냈는데 얼굴을 빤히 쳐다보셨다. 내가 환하게 미소짓자 스님도 환한 미소로 답하셨다. 미소가 너무나 따뜻해서 순간 마음 속 가장 깊은 곳까지 온기가 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살면서 본 가장 천진난만하면서 공허한 미소였다. 그 속에는, 영혼 깊숙히 자유로운 아이와 속세를 온전히 떠난 노승(老僧)이 공존하고 있었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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