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세기 말, 한반도의 불교는 조선의 오백년에 걸친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는 신라-고려시대를 거치며 천년이 넘도록 국교(國敎)의 역할을 했던 불교가 정치권력과 결탁하며 민중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조선건국 이후 기생, 백정과 더불어 천민계급으로 전락한 승려는 도성출입이 금지되고 국가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며 힘든 시기를 겪었다.

 

 

2. 그러던 중 1879년,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지'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달아 선맥(禪脈)을 이어간 선사(禪師)가 있었는데, 그가 경허(鏡虛)이다. 경허선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여러 제자들이 몰려들었는데, 그 중 가장 뛰어난 제자 세 명인 혜월(慧月), 수월(水月), 만공(滿空)을 일컬어 삼월(三月)이라고 한다.

 

 

3. 한국불교에는 남진제 북송담(南眞際 北松潭)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한강 이남에서는 진제스님의 도가 높고, 한강 이북에서는 송담스님의 법력(法力)이 뛰어남을 일컫는 말이다. 만공스님의 덕숭문중에서 배출한 선지식(善知識) 중 한명이 현재 인천의 용화사에 기거하시는 송담스님이고, 혜월스님 문중의 법제자 중 한 명이 현재 부산의 해운정사에 주석하시는 진제스님이다.

 

 

4.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깨달음에 대한 오해가 없었다. 부처님이 제자들의 견처(見處)를 항상 일러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 사후에는 깨달음에 대한 논쟁이 끊이질 않았는데, 대혜종고(大慧宗杲)가 창안한 간화선(看話禪)에서는 수행자간에 질문을 하고 상대가 이를 올바르게 대답하는지 확인하는데, 이를 법거량(法擧量)이라고 한다.

 

 

5. 간화선 수행자들간에 법거량을 할 때 묻는 질문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그 중 가장 낮은 단계를 법신변사(法身邊事)라 하고, 그보다 어려운 경계를 여래선(如來禪), 마지막으로 가장 난해한 단계를 향상구(向上句)라 한다. 이는 부처님 당시의 전통을 잇는 남방불교에서 깨달음의 경계를 수다원(Sotāpanna), 사다함(Sakadagami), 아나함(Anāgāmi), 그리고 아라한(Arhat)으로 일컫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향상구를 투과(透過)한 수행자는 아나함과 비슷한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6. 현재 한국에서 향상구 공안까지 투과했다고 알려진 선사는 진제스님이 유일하다. 내 부족한 안목으로는, 일제시대 이후 향상구 공안까지 타파한 선사는 성철(性徹), 향곡(香谷), 그리고 진제(眞際)스님 정도로 보인다. 현재 진제스님의 세수가 90세 이신데, 머지 않은 미래에 젊은 간화선 수행자들의 안목을 점검해 줄 선지식이 없을 수 있다는 점은 불자로서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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