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좋은 정치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듯이 내 나름대로 정치인을 판단하는 오래된 기준이 있다. 바로, 그 사람이 이루고자 하는 대의(大義)가 있는가, 그리고 그 대의를 이룰만한 능력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2. 김대중 대통령은 성공하는 정치가가 되기 위해서는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서생적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만이 대의를 품을 수 있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상인처럼 돈을 벌고 이해타산을 맞추는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3. 이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국의 근현대사를 장식했던 김영삼과 김대중은 훌륭한 정치인이다. 군부 독재의 서슬 퍼런 총칼의 위협 앞에서도, 당시의 사람들은 개념도 잘 몰랐던 민주화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으로 자신들의 일생을 바쳤다. 단순히 민주화라는 목표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군사 정권의 박해와 중앙정보부의 수도 없는 암살 시도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존경받아 마땅하다.

 

 

4. 마찬가지로 10월 유신 이전의 박정희도 훌륭한 지도자였다. 박정희에게는 한민족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의 독재를 비난하지만, 한반도의 민중은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독재 치하가 아닌 적이 없었다. 왕명에 조금이라도 거역하면 삼족을 멸하는 독재 치하에서 살아온 민중들에게는 기득권의 권력 싸움보다는 배고픔과 빈곤이 더 시급한 문제였다. 20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단군 건국 이래 처음으로 남한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5. 그러나 이준석에게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대의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십여 년 전부터 이준석이 풀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나 지금까지는 그것을 포착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보다도 이준석으로부터 찾아낸 일관성은 - 이 정치인은 선거 자체에 엄청난 흥미가 있으며 선거에 이기는 데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삼국시대로 치자면, 이준석은 전쟁에 이기는 데에 몰두하는 전략가의 기질이 있을 뿐 그 전쟁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나는 이준석을 이류 정치인으로 본다.

 

 

6. 오히려 내가 눈여겨보는 보수 진영의 정치인은 이준석을 보좌하는 천하람 의원이다. 아직 대중적인 인지도도 부족하고, 정치인으로서 의미 있는 업적을 이룬 것도 아니지만 이 사람에게는 이루고자 하는 무엇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최소 십 년은 이준석을 방패막이로 삼아 정치인으로서 잘 성장해야 할 터인데, 이준석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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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고향이 대구일뿐만 아니라 극도로 보수적인 성향의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내 정치적 성향은 중도적 진보인데, 천성적으로는 진보에 가까운 성향인 것이 보수적인 부모님과 주변의 영향을 받아서 중도적인 진보가 된 듯하다.

 

 

2. 진보적인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까지 정치인 이재명에 대해 가졌던 인상은 '굉장히 유능한 정치가이나 인품적으로 조금 흠이 있는 사람'이었다. 가족 문제, 조폭과의 연루설, 대장동 의혹 등의 여러 사건들로 인해 자연스레 만들어진 인상이었다. 미국에 지내며 한국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다가 최근 이재명 후보의 삶을 다시 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인품이 훌륭한 축에 속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3. 이재명 후보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공장에 취직하여 프레스에 손목 관절이 으깨지고 고무벨트에 손이 감기는 등의 힘든 시절을 보내면서도 주경야독을 통해 대학에 입학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점에 판검사가 되어 편한 삶을 택했을텐데, 이 갈림길에서 노무현, 문재인, 그리고 오바마가 걸었던 인권 변호사의 길을 택한 점이 인상깊었다.

 

 

4. 2017년 대선 때 민주당 경선이 있었을 때 이재명 후보를 눈여겨 보았는데, 내가 특이하게 보았던 부분은 이재명 후보의 관상(觀相)이었다. 관상은 전생의 업(業)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으로 이를 너무 의존해서도 안 되지만, 관상을 무시하는 것도 무지의 소산이다. 관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인데, 이재명 후보의 눈은 가늘게 반만 뜨는 반안(半眼)이라고 하여 밖으로는 세상을 보고 안으로는 내면을 살핀다는 최고의 지혜를 가진 눈이다. 또한 이재명 후보의 귀는 대부(大富)하거나 대귀(大貴)하는 형상인데, 아마 눈이 평범했다면 판검사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을 택했을 것이다.

 

 

5. 그러나 무엇보다 존경스러운 정치인 이재명의 자질은 낙천적이고 발랄한 심성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무거웠고, 문재인 대통령은 순진했는데, 정치인 이재명은 낙천적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린시절, 검찰과 기득권의 무자비한 탄압, 심지어 목숨을 잃을뻔한 피습 사건을 겪고도 마음에 품은 분노나 원한이 별로 없는 듯이 보인다. 가끔씩 언론에서 웃는 모습을 보면 마치 어린아이가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철학자는 인간 정신의 최고단계는 어린아이라고 했다. 위대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6. 부인 김혜경 여사나 아들 이동호에 대해서는 크게 할 말이 없다. 누가 보아도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사건들이 있었다. 다만, 이처럼 사회의 밑바닥에서 지도자가 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업의 파도가 휘몰아치기 마련이다. 가까운 가족들은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들다. 정치인의 주변에 신경쓰기보다는, 그 정치인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7.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이토록 와 닿은 적이 있었던가. 한국에 봄이 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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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의 모든 종교인들은 그 창시자의 뜻을 이해하고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 삶의 큰 의미가 된다. 불교인은 부처님을, 크리스천은 예수님을, 유대인은 모세와 다윗을, 이슬람교도는 무함마드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고 닮아가고자 할 것이다.

 

 

2. 부처님에 대해서 무의식 중에 궁금한 점 하나가 있었는데, "왜 네팔에서 태어나셨을까?"하는 점이었다. 당시 세계 문명의 중심지였던 중국이나 그리스 근처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구가 많고 수행자들이 모여들었던 인도가 아닌 것이 의아했다. 그러나 내가 불경, 특히 니까야를 읽으며 느낀점은 부처님은 무엇 하나 의도되지 않은 말씀과 행동을 하지 않으신다는 점이었다.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신 것도, 세속적으로 충만한 환경에서 자라며 삶의 유한함을 절실히 깨닫고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3. 부처님이 자신이 태어날 곳을 스스로 정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던 중 최근 ChatGPT에게 한 질문을 했는데, "전 세계 인구밀도의 중심지가 어딘가요?"라고 물으니 흥미로운 대답이 나왔다. 전 세계 인구밀도의 중심지, 즉 지구상의 모든 인류의 위치를 평균낸다면 "Uttar Pradesh"라는 네팔과 인도의 국경지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태어나신 Lumbini와는 5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지구라는 행성의 스케일로 보았을 때는 같은 동네로 보아도 무방한 곳이었다.

 

2000년대 세계인구밀도를 시각화한 지도와 Lumbini의 위치(빨강)

 

"What place is the center of the population density on earth?"에 대한 ChatGPT의 답변

 

 

4. 내가 지금까지 이해한 부처님의 인격으로 보았을 때, 당신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이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도록 의도하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은 불자들도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다르마(Dharma)의 깊이는 그 어떤 지적인 이해도 초월한다고 가정하는 것이 거의 정확하다.

 

 

5. 다만, 부처님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가르침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믿는 것과 그 가르침이 깊은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니체와 플라톤이 현대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는다고 하여, 2천만 뷰를 기록하는 유튜브의 내용이 그들보다 더 충실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난해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여러 나라들에 의해 계승되고 근대에 들어서는 미국을 포함한 서양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아 그 뜻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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