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3] 사마타와 위빠사나 - 3
8.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삼법인(三法印), 즉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통찰한 사람은 첫번째 과(果)를 증득하게 되는데 이를 일러 수다원(須陀洹)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예류과(預流果)를 증득하였다고도 하는데 한역하면 '흐름에 들었다'는 의미가 된다. 왜 흐름에 들었다고 말하는가 하면 예류과를 증득하면 세 가지 결박의 번뇌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즉, 유신견(有身見), 의(疑), 그리고 계금취견(戒禁取見)이 멸하게 된다.
9. 유신견은 불변하는 '나'가 있다는 견해인데, '나'라는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몸, 생각, 느낌, 감정의 다발임을 깨달으며 이 견해가 제거된다. 의가 끊어짐은 부처(佛)와 부처의 가르침(法)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체험을 해버렸기 때문에 믿지 않으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 어떤 이들은 승가(僧伽)에 대한 의심도 사라진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오히려 법을 따르지 않는 승가, 즉 세속화된 종교 집단에 대해서는 의심이 더해진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계금취견, 즉 형식적 계율과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믿는 견해가 사라지게 된다. 종종 불교를 공부한 사람들 중에서 해탈했다고 자청하며 막행막식(莫行莫食)을 하거나 술이나 성(性) 탐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이 삿된 견해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탐진치(貪瞋痴), 즉 감각적 욕망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이 옅어지지만 온전히 멸하지는 않는다.
10.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예류과를 증득한 사람은 위빠사나 수행을 지속하거나 사마타 수행으로 돌아가야 한다. 위빠사나 수행을 계속해도 되는 사람은 계율과 선정, 그리고 지혜가 이미 깊은 사람으로 상근기(上根機)에 해당하는 자여야 한다. 그러한 수행자는 칼날이 여전히 예리하기 때문에 위빠사나 수행을 지속하여 두번째 과(果)인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증득할 수 있다. 반대로 계율과 선정, 그리고 지혜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근기(中根機) 혹은 하근기(下根機)에 해당하는 자는 사마타 수행을 통해 선정력을 키운 후 다시 위빠사나 수행으로 돌아와야 한다. 더 단단한 물체를 베기에는 그 칼날이 아직 예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11. 사다함과를 증득하는 수행자는 번뇌의 씨앗이 되는 탐진치가 아주 미세할 정도로 줄어든다. 사다함과는 인간이 가진 상대적으로 거친 번뇌에 해당하는 욕계 수혹인 상상품(上上品), 상중품(上中品), 상하품(上下品), 중상품(中上品), 중중품(中中品), 그리고 중하품(中下品)까지 끊어진다. 그 후에는 수행을 지속하여 아나함(阿那含)에 이르고 마지막으로 모든 번뇌가 멸한, 즉 누진통(漏盡通)을 증득한 아라한(阿羅漢)에 이르게 된다.
13. 여기까지가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의 큰 줄기이다. 굳이 종교인이 되지 않아도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사실 내가 만났던 뉴욕 금융가의 고위직들 중 명상이나 요가를 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었다. 일반인 재가자(在家者)들 중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깊이 한 사람으로 정신과 의사 전현수 박사가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찾아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