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7] 라떼에 대하여
1. 요즘만큼 갈등이 다양하고 깊은 시기가 있었던가 싶다. 많은 갈등들 중에서도 최근 "라떼는 말이야~"로 희화화되는 세대간 갈등은 흥미로운 점이 많다.
2. 세대간 갈등은 한국의 8-90년대 산업화를 이끈 5-60대와 그들의 자식 세대에 해당되는 2-30대 사이에서 가장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며 조직의 중진으로 자리 잡은 이들에게는 사회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세대가 철이 없어 보인다. 중장년층이 흔히들 언급하는 불만이 요즘 세대의 인내심 부족, 충성심 부족, 끈기 부족 등이 아닌가 싶다.
3. 어떤 세대가 더 옳은지를 떠나서, 왜 윗세대는 젊은 세대에 비해 인내심과 충성심이 더 있었는지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유는 간단한데, 먹고 살아야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밥을 굶어본 사람도 태반이고, IMF를 거치며 일자리를 잃을 경우 당장 자신과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해야 되었던 이들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었다. 이 때문에 웬만한 상사의 모욕은 참고 넘어가기도 하고 조직에서 최대한 오래 버티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인내심과 끈기가 길러진 것이다.
4. 그에 반해 이들의 자식으로 자란 젊은 세대는 다르다. 밥이 없어서 굶거나 생계를 걱정하며 자란 사람은 윗 세대에 비해 현저히 적다. 그러니 자연스레 '먹고 사는' 문제보다는 '잘 먹고 잘 사는'에 해당되는 삶의 의미를 고민하게 되었다. 던지는 질문 자체가 달라져버린 것이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세대 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5.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윗 세대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비로소 '삶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는 윗 세대가 일구어 놓은 토양 위에서 조금 더 높은 가치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일보다는 라이프를 택하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고, 자신의 끼를 방출해 한류도 만들었던 것이다.
6.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먹고 사는 문제가 안정된 후에 문화가 꽃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럽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예술가들 뒤에는 든든한 후원가인 교회와 교황이 버티고 있었다. 또,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가 한 나라의 왕자였던 점은 우연이 아니다. 왕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재물, 성, 권력에 대해 초탈하여 삶과 죽음의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매달려 해답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큰 사상가, 학자, 예술가들은 대체로 큰 상인을 옆에 끼게 된다.
7. 이런 관점에서 세대차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젊은 세대는 윗 세대가 일군 토양 위에서 존재하고, 윗 세대는 젊은 세대가 한 차원 높은 고민을 했기에 진보를 이룰 수 있었다.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사람끼리 무엇이 그렇게 다르겠는가? 시대와 환경이 달라서 던지는 질문이 달랐던 것뿐이다.
8.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요즘 젊은 애들은 버릇이 없어서 미래가 우려스럽다"고 했다고 한다. 라떼는 예전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아니 있어야만 한다. 이는 젊은 세대가 정신적 진보를 이루었다는 가장 확실한 반증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