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2019-05-01] 에크하르트 톨레

영햄영햄 2019. 5. 2. 09:35

1. 불교에서 추구하는 깨달음을 열반이라 한다. 

 

 

2. 그러면 열반이란 무엇인가. 고통과 번뇌가 사라진 상태다. 인간이 겪는 모든 정신적인 고통은 알고 보면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 사람은 사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다. "저 사람이 싫어"라고 내가 생각하는 순간 고통과 번뇌가 생긴다. "저 사람 생각보다 괜찮네"라고 생각하면 기쁨이 생긴다. 고통도, 기쁨도 모두 자신이 짓는 것이다.

 

 

3. 고통과 기쁨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집착이 있기에 고통과 기쁨이 있다. 집착은 어리석음, 즉 무명(無明)에 기인한다. 집착하는 것을 얻으면 기쁘고 얻지 못하면 고통스럽다. 집착하고, 그 결과로부터 생기는 고통과 기쁨의 반복이 삶의 큰 흐름이다. 집착한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이고, 고통을 없애는 근본적인 방법은 무명으로부터 벗어나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4. 어떻게 하면 열반할 수 있는가. 단계가 있다. 이를 경전에서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그리고 아라한으로 이름 짓는다.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을 '공양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아라한이라 한다. 번뇌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부처만 아라한과를 성취한 것은 아니다. 부처 당대에 500여 명의 아라한이 있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아라한과를 성취한 사람이 있었다. 소크라테스, 예수, 그리고 노자도 비슷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보이고, 현재 한국 종정인 진제스님도 8년간의 화두 참구를 통해 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깨달음을 얻었음을 어떻게 아는가? 본인과 이미 깨달은 사람들만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겉으로 보아서는 알기 힘들다. 불가(佛家)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의 매우 비슷한 패턴이 있다. 먼저 깨달음을 얻는 순간 그 만족감에 자신의 깨달음을 표현한다. 이를 오도송(悟道頌)이라 한다. 

 

다음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 지었다는 노래다. 

 

많은 생을 거치면서 나는 방랑하였네.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네. 

이 집을 지은 이를. 

반복되는 탄생은 괴로운 일이었네. 

오, 집 지은 이여, 그대가 보인다. 

그대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리. 

그대의 서까래는 다 부서졌고, 그대의 마룻대는 다 흩어졌으니. 

마음은 조건화되지 않은 것을 얻었으며 갈애의 끝은 이루어졌다네.

 

6. 그리고 깨달음의 순간을 음미한다. 부처는 깨달은 후 21일간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삼매에 빠져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정리했다고 알려져 있다.

 

 

7. 어제 유튜브를 보다가 현존하는 사람들 중에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알았다.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다. 이 사람이 살아 온 방향과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번뇌로부터 크게 벗어난 사람으로 보인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하던 그는 29살까지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끊임없이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도저히 나같은 놈이랑은 못 살겠어.'라는 생각을 하는 도중, '나같은 놈이랑 못 사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빠지게 되고 자신에게 '참나'가 있음을 자각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 자신의 내면이 온전히 평화롭게 바뀌었음을 알게되고 더 없는 행복감을 런던의 Russell Square에서 2년간 음미했다고 한다.

 

 

8. 내가 이 사람에게 관심이 생긴 이유는 단순하다. 이 사람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절, 염불, 참선 수행을 전혀 하지 않고 견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즉 깨달음을 얻는 데는 수 많은 방법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뉴욕의 도암스님은 육조 혜능의 수행법을 이은 선불교 수행자이지만 굳이 이 방법이 아니고도 마음의 안정을 얻는 방법은 존재한다. 이것이 나를 굉장히 자유롭게 해주었다.

 

 

9. 다만, 에크하르트 톨레의 방식은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고?"하고 묻는 화두참선과 방법론적으로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자살을 생각할 정도의 엄청난 에너지로 자신도 모르게 참선을 한 셈이다. 부처님이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6년 동안 참구한 것,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빛과 함께 달리면 빛은 어떻게 보일까?"라는 생각 하나를 10년간 붙들고 있었던 것과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결국은 논리적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끊임없이 붙들고 있는 것이 진리를 통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론인가 보다.